© 2015 by Suh Jeong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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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 Criticism

인생을 은유하는 의인화된 나무

나무는 어쩐지 인간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다. 직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런지 모른다. 아니 곧게 서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을 향해 뻗은 나뭇가지가 마치 인간의 팔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무는 그림 속에서 의인화 되는 일이 적지 않다. 나무 형상을 하고 있되 거기에 인격을 부여함으로써 인간형상을 찾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서정도의 작업은 나무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일반적인 풍경도 있으나 이번 전시회에서는 거지반 나무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 가운데서도 은행나무를 제외하고는 플라타너스뿐이다. 이처럼 특정의 나무를 소재로 하는 경우도 흔치 않다. 왜 플라타너스에 시선이 머무는 것일까. 플라타너스를 소재로 한 일련의 작품을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나타난다.

나무 전체가 아닌 큰 줄기 부분만을 화면에 가득 채우고 있다. 일테면 클로즈업시킨 형국인데, 그러고 보니 나무줄기의 껍질이 선명히 시선에 잡힌다.

 

플라타너스 줄기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껍질의 변화가 매우 왕성하다. 다시 말해 나무가 성장하면서 껍질을 벗게 되고 안으로부터 새 껍질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플라타너스는 이처럼 껍질을 바꾸는 과정이 매우 명료하게 드러난다, 새 껍질에 밀려 줄기에서 떨어져 나가는 마른 껍질이 있는가 하면 막 구각을 벗고 맑은 연두색을 드러내는 새 껍질에 이르기까지 색상의 차이가 층층이 존재한다. 따라서 얼룩점과 같은 형태의 변화무쌍한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듯이 다양한 차이를 드러내는 폭 넓은 색상의 변화는 플라타너스의 빠른 성장과정을 극적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그는 여기에서 한 인간의 삶, 즉 인생과 유사한 드라마틱한 일면을 보게 되었는지 모르다. 더구나 껍질이 떨어져 나간 자국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색깔의 층은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한꺼번에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이렇듯이 플라타너스는 그 형태에서 의인화 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가 하면 은유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그는 플라타너스가 계절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 한다는 사실을 주시한다. 봄에는 연두색 새잎과 거친 줄기를 대비시킴으로써 생명의 힘찬 기운과 신비를 드러낸다. 여름에는 무성한 녹음을 드리우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물든 생기 잃은 쇠잔한 모양으로 변한다. 그리고 겨울에는 모든 잎을 떨어뜨린 채 차가운 공기 속에 떨고 있는 앙상한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한다. 이는 진지한 관찰과 사색을 통해 순환하는 계절에 순응하는 플라타너스의 삶의 양태를 면밀히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인생에 비유될 만한 의미를 내포한 플라타너스는 하늘을 배경으로 의연하게 자리한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양각구도는 시각적인 압박감을 주면서 플라타너스 줄기를 선명히 부각시킨다. 배경으로서의 하늘은 대다수의 작품에서 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어두운 구름이 아니라 밝은 구름이다. 변화무쌍한 구름의 이미지는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플라타너스의 이미지와 유사하다. 빛의 작용으로 인해 상상을 초월하는 갖가지 신비한 이미지를 연출하면서 극적인 시각적인 질서를 만들어낸다. 플라타너스의 문양과 구름의 이미지는 새삼 자연이 만들어내는 조형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다.

 

그는 플라타너스와 구름의 조화를 통해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타너스의 그 독특한 형태적인 이미지에 국한하지 않는 조형의 묘미를 보여주는 셈이다. 여기에는 실제를 방불케 하는 극적인 사실묘사가 선행되고 있다. 물상의 형태 및 색깔을 실제처럼 재현하는 극렬한 사실성은 타고난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재현적인 기술만으로는 리얼리티, 즉 사실성을 표현하기 어렵다. 플라타너스를 현실적인 공간에서 보고 있는 듯싶은 착각은 다름 아닌 생명의 기운을 꿰뚫는 정확한 눈과 타고난 미적 감수성에 기인한다.

갈색으로 변한 플라타너스 낙엽을 그린 작품은 정물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바람이 불면 금세 날아갈 듯싶다. 실제와 허구를 분별하지 못할 정도의 사실적인 묘사기술은 조형적인 상상력을 무한히 확장시킨다. 하지만 그는 환상적인 세계, 또는 초현실적인 세계보다는 실제에 대한 관심과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플라타너스 낙엽을 클로즈업시킨 정물화 형식의 작품에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서려있다. 실재하는 물상을 실제보다 크게 확대했을 때 예기치 않은 시각적인 이미지 및 정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아무튼 그는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플라타너스라는 나무를 통해 조형세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명쾌하게 보여준다. 눈에 보이는 사실 이면에 인간 삶을 대비시키는 은유법은 나무그림 한 작품에서 새삼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담겨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신항섭 I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