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전시] 서정도 작가 전시, <소박한 초대>씨즈온 컬쳐프레스 / 활동
2014.08.17. 21:56
http://blog.naver.com/kimnuri9/220094951160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또 다른 자화상 , <소박한 초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영위하기에 바쁜 나날들, 저마다 스스로를 돌아보기란 무척
이나 어렵다. 특히 돈과 명예로 개인의 가치가 결정되는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
들에게 마음의 휴식이란 사치와 같다. 이와 같이 무엇을 놓치고 살아가는지, 옳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전시가 새로 공개되었
다. 삼청동에 위치한 정수화랑에서는 지난 9일부터 서정도 화가의 개인전인 <소박한 초대>가
열려 이목을 끌었다.
서정도 화가의 <소박한 초대>는 그간 우리가 알고 있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표현으로 인간
의 삶과 가치를 돌아보도록 한다. 오랜 시간 인간과 태초부터 역사를 함께 만들어온 나무가
또 다른 ‘자화상’이 되어 여러 사람을 맞이할 예정이다. 그간 대구 중심으로 활동해 온 서정도
화가는 시간에 따른 나무의 변화를 깊이 연구하며, 그로부터 섬세하게 자신만의 가치관, 예술
관을 탐색하고 완성했다. 특히 많은 이들이 거리에서 익숙히 발견하는 플라타너스 나무를 주
제로 이파리, 껍질의 변화 등을 통해 삶의 다양한 관념과 가치를 표현하고자 했다. 즉 <소박
한 초대>는 이처럼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따스한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전시라고

말할 수 있다.
낡고 오래되어 약간 비틀어진 나무. 껍질이 거칠게 벗겨진 나무. 색이 짙게 바란 채 구멍이
숭숭 뚫린 이파리. 각 작품은 저마다 사물과 배경, 색과 질감의 차이를 드러내며 독특한 분위
기와 메시지를 전한다. 이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고요하고 서정적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각각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특히 <아쉬움>, <황홀한 오후>, <대화>는 가장 큰

인상을 전달한다. <황홀한 오후> 속 얇은 나뭇가지들 사이를 덮은 붉은 이파리는 따스함을
넘어선 뜨거움은 물론 묘한 생동감과 즐거움을 모두 느끼게 한다. 반면 <대화>는 서로 미묘
하게 다른 모양과 색의 나무 두 그루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태로 그려져 실제 인간 사이의
관계와 그 감정을 유추하게끔 한다.
결국 화가는 단순 풍경을 넘어서서 관람객 스스로 그림 안에서 자신의 삶과 의미를 발견하고
통찰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동일한 인물의 행동이 고스란히 그려져 직접적으로 특정한 감정을

전달하는 자화상보다 더 자유롭고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소박한 초대>는 제목처럼 부담 없이 스스로와 마주볼 수 있게 그 자리를 마련해주는 전시
다. 누구나 살면서 수많은 사건에 부딪히고, 일정한 관계를 맺고 여러 감정을 느낀다. 모든 일

상이 마냥 순탄하고 행복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체념과 좌절만이 무조건적인 답은 되지 않는
다. 이번 전시는 현재의 삶과 제 자신에 지친 이들의 마음에 공감과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삶의 여유와 소박한 행복을 되찾길 원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소박한 초대>는 오는 21일까지 정수화랑에서 전시가 진행될 예정이다.
김누리 기자
<kimnuri9@naver.com>
[출처][전시] 서정도 작가 전시, <소박한 초대>|작성자낭만스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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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도작가의 작품에서는 빛과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가 있다. 분명 나무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은 많다고 할 수 있지만 작품안에 있는 나무들과 같이 색상에서 표정이 나오는 경우는 많지않다고 할 수 있다.활을 통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들 하지만 그러한 나무들중에서 자신을 기억해주는 나무들은 몇그루가 되어줄 것인가.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에 대한 흔적을 얼마나 남기고 있는 것일까.삶의 중반을 지나 후반부를 향할 때쯤 되면 인간은 생각하게 된다. 세상과 인생에 반드시 어떻게 되어야한다는 것과 결정론적 목표와 정답같은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젊은시절부터 꾸준히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더욱 절실하게 삶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그냥 죽음을 맞으면 부패의 시간이 지나서 물기조차 사라지면 한줌의 흙이 되어버리는 존재에 대한 허무는 오히려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이들을 다시금 바라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해준다.세상은 성악설도 성선설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지만, 세상이 악으로 가득찰때 스스로 자정하여 선의 힘을 채우고자 하는 보다 큰 존재의 힘이 모습을 드리우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선과 악의 균형을 채우고자 하는 진리의 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서정도작가의 그림은 참으로 다양한 얼굴과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소박함속에서도 대범함을, 노련함안에서 순수함을. 서정도작가는 앞으로 많은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를 하게 만드는 대목이라고 생각된다.소박한 초대나무는 인간의 태초의 체험과 역사의 경험을 함께한다. 아주 오래된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살아가는 각양각색의 모양을 담아내고 변용되어 왔다. 그때마다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인간의 삶에 견주에 새로운 개성으로 드러낸다.작품 <소박한 초대>를 보자. 새로운 생활을 하고자 한적한 어느 곳에 새로운 터전을 잡고자 했다. 아직 정리되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삶의 공간에 문득 반가운 손님이 방문한다. 대접할 것 하나 없어 주위를 살피다 문득 오래된 탁자를 발견한다. 누가 쓰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물로 씻고 닦았더니 쓸만하다. 오히려 정감이 있다. 반가운 손님을 위해 마당 한켠에서 탐스럽게 자란 포도 몇 송이를 탁자에 올린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냄새가 가득하다. 큰 기술을 요하지 않은 탁자가 그려져 있다. 시간의 흔적을 알게 하듯 군데군데 금이 가고 갈라져 있다. 오랫동안 손길을 타지 않아 메마르고 비틀어진 모양새다. 여기에 서정도의 작품이 가치를 발한다.서정도의 작품에 나타나는 나무는 사람들의 마음이며 즐거움이다. 행복한 생각과 즐거운 상상에서 비롯된 포근한 고향의 전경이 된다. 지금은 꽃가루가 날린다고 베어져 많이 사라졌지만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플러터너스 나무는 흔한 가로수였다. 국민학교(시대의 변화를 감지 위하여 초등학교를 과거형으로 적음) 교정에는 언제나 아름드리 플러터너스 나무가 있었다. 어느 곳에서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년시절의 추억과 기억을 오롯이 담고 있다.그의 그림에는 마음을 정화시키는 마력이 있다. 작품들은 일상의 풍경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기운과 가치를 중심에 두고 있다. <아쉬움>,<관조>,<생성과 소멸>이라는 작품 명제들만 보더라도 나무에 대한 다양하고 독특한 관념을 지니고 있음이 확인된다. 나무는 작가의 이해나 마음의 변화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표현된다. 자신과 삶과 가치와의 관계 규명에서 선택된 소재가 된다. 그렇다고 나무를 그리는 화가라거나 구상미술로서 풍경화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체계화된 기준에 따라 나무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설명 또한 상이하다. 이것은 스스로 체계화된 세계관과 예술관에서 비롯된 표현방식의 하나이다. 자신을 에워싼 환경에서 주위를 돌아보고, 조화로운 삶과 행복을 제공하고자 하는 정신의 가치를 발현하고자 하는 결과물이다.조화로운 삶의 방법으로 나무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무가 나무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이미 사람이며, 바람이며, 물이며, 집으로 변화와 변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어떤 상황이나 결과에 대한 구체적 모습이 나무로 표현 될 뿐이다. 플러터너스 나무 또한 같은 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플러터너스를 주로 그리지만 그를 플러터너스 작가로 지칭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그리는 나무는 일련의 풍경화에 등장하는 나무가 아니다. 풍경의 한 자락을 그리지만 그것은 눈으로 확인하는 풍경이 아니라 마음에서 확인하는 마음의 전경이다.플러터너스는 너무나 친숙하고 익숙하여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먹는 수종이다. 플러터너스는 껍질이 벗겨진다 해서 우리말로는 버즘나무라고도 한다. 학교나 가로수로 많이 심은 이유 중의 하나가 정토수(淨土樹)라고 하여 토양을 정화시키는 나무이면서 공해에 잘 견디는 종류이다. 그러면서 여기에 어릴 적 추억과 향수가 있다. 껍질이 벗겨져 새살을 돋듯이 껍질에 사람의 역사를 쓰고 시간을 기록한다. 그가 플러터너스 나무를 즐겨 그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람의 역사와 기록이 쓰여 과거의 흔적으로 남듯이 껍질에 역사가 쓰이면서 새 삶을 유영하는 모습이 이와 흡사하다.보통 사람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태의 나무를 그리면서 자신의 방식에 따라 해석하고 표현한다. 여기에 한층 더 나아가 삶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가치들을 나무 이파리와 열매, 껍질이 벗겨지는 광경, 계절의 변화를 통해 이해한다. 이와 같은 표현방식은 인간의 삶과 함께해온 나무의 변화를 관찰하여 특별한 의미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예술표현의 연구 결과이다.서정도의 작품에는 인간의 근원적 존재방식이 숨어있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의 정신가치와 현재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철학적 해법이 있다. 자신의 예술관으로 작품을 제작하지만 그것은 이미 개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함께 살아갈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더 포근하고 행복하다. 풍만한 즐거움과 미래가 제공된다.2014년 8월 박정수(미술평론가. 정수화랑대표) 

© 2015 by Suh Jeong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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